군대 기억 2 편
누구의 군시절 얘기를 들으면 내 군대가 참 편했구나라는 생각이 들 수 있고, 또 다른 누군가의 얘기를 들으면 이 자식은 땡보였구나라고 생각이 들게 합니다. 그리고 아마 저는 후자에 가까울 거에요. ^^;

아직 군대 안간 사람들이, 비스게 같은 곳에서, 군생활이 어떠냐고 물어보면 답이 있나요. 가지각색인걸. 그 가지각색 중 하나인 저의 기억들을 풀어봅니다.


#1 오, 바다드아~~

훈련소에서 열차를 타고 용산역을 경유하여, 원주에 도착 1군사령부 예하의 1보충대로 가서 며칠 대기.

거기서 병과 특기번호 3111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됐고 배정 부대는 102 여단이라고 한다.

여단? 특공인가...

훈련소에서 같이 온 애들 중 나를 포함 세 명이 이곳으로 배정받았고, 우린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 행정관이 말해주길 그냥 양양에 있는 보병 여단이란다. 비교적 분위기 좋은 곳이란 말과 함께...

자대로 떠나는 날, 버스를 타고 양양에 갔는데 그때는 뭐 어떻게 가는건지 몰랐지만, 아마 훗날 경험으로 미루어 짐작해보면 미시령을 통해 속초를 경유하여 간것 같다. 당시 최고 히트곡 쿵따리샤바라를 줄기차게 들으며... (훈련소에선 쿵따리샤바라를 기상할 때 틀어줘서 당시 가장 듣기 싫은 노래였다.)

한참을 가다가 바다가 보인다.

오... 이건 나에겐 새로운 세상이었다. 내륙 중의 내륙 충북에서 인생 대부부을 살았던지라 바다는 가본 게 손에 꼽을 정도고 바닷물을 접촉한 건 딱 한번이었을 정도니까.


# 군생활 편하게 하는 건가...

부대에 처음 들어가서 위병소에선 위병 고참 하나가, 부관과에선 부관장교가 유독 나한테만 이야기를 걸며 내가 여단사령부에 남을 듯한 암시를 줬다. 그 무리 중 행정특기는 나만 가지고 있었기에 그랬던 것 같다.

같이 온 애들 둘 중 하나는 훈련소에서 같은 내무반에 있었고, 다른 한명은 전에 말한 투스타 조카였다. 논산에서부터 1111을 받는 경우는 없지만 특정 특기를 못받을 경우 보류로 빠지고 그냥 배치부대에서 특기번호를 주는데 대부분 그냥 보병을 주는 듯 하다. 걔들이 그런 상황인지라 나를 되게 부러워했다.

당시 전입병 대기실이 그 며칠 후 내가 있게될 내무반 바로 옆에 있는 오바로크 실이었다. 그래서 거기 오바로크 병이 하나가 전입병들인 우리에게 말을 걸어주는데, 알고보니 6월 동기였다 -_-;;  하지만 어찌나 아는 척을 해대던지. 특히 본부대 오면 되게 좋다고, 물론 그노마는 보름정도 먼저와서 쪼~끔 생활해봐서 그런 것이겠지만 훗날 생각해보면 우습다.

결국 나를 데려가는 행정병은 바로 맞은편의 본부대 행정반의 행정병이었고, 나는 본부대로 빠지게 됐다.

투스타 조카는 유감스럽게도 예하 대대로 내려갔고, 다른 하나도 대대로 내려갔다.


# "OOO 이병입니다." 가 그곳 본부대의 관등성명 대는 방법이었다. 내가 들어오기 일년전 쯤인가 있던 대장이 딱딱한 분위기를 완화하기 위해 이렇게 정했단다. 공식 의례, 진급식이라든가 무슨 수여식때 뭘 받을 땐 "일병 OOO"이라고 하는 걸 제외하면 모든 통상의 관등성명이 저렇다.

상병 때였던가, 육본에 있는 장교랑 통화했을 때 내가 저렇게 관등성명을 대니 무슨 관등성명을 그렇게 대냐고 해서 실랑이를 벌였던 경우도 있었다. ㅎㅎ


# 102 여단의 대외명칭은 '일출부대'. 양양 일대를 커버하니 해뜨는 부대라는 얘기다. 동해에 포진된 부대가 많을텐데, 그 부대가 쌍팔년도 쯤 창설된 것을 생각하면 잘잡은 이름인 듯 하다. 부대마크는 102를 갖고 바다에 해뜬 모습을 나타낸 것인데, 지금껏 그걸 다른 곳에서 본 적은 없다. ㅎㅎ


#나는 인사처에 배정받았고, 우리 내무반의 분대장의 부사수가 됐다. 사수랑 부사수가 내무반에 같이 있는 건 드물다고하는데, 그 보직이 한달에 한번씩 2박 3일씩 밖에 나갔다 오는 거라서 그리 달갑진 않았을 테다.

그 보직은 흔히 장교계, 보임계라 부르는 것으로 여단의 장교 인사에 관련한 걸 맡아하는 것이다. 사무실 내려간 첫날 장교연명부(계급, 성명 소속, 군번, 임관기수가 좌르륵 적혀진 거)를 내주면서 거기 있는 장교들 인적사항 다 외우라고 하는데 -_-;;;

물론, 이백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의 그걸 다 외울 수 없는 것이고 어지간히 알아두면 편하다는 것이다. 업무에서 자주 나오는 사람들과 사무실 간부들 군번은 당시에 다 외웠는데 지금은 물론 다 까먹었다.


# 일출부대의 연례 행사가 둘 있는데, 하나는 여름의 전투수영, 하나는 설악산 대청봉 등정이다. 내가 광복절 근처에 전입했으니 이미 전투수영을 지나갔고 9월 무렵에 하는 설악산 등정이 얼마 남지 않았던 때다.

전투수영은 말이 수영이지 바닷가 가서 퍼질러지게 놀다 오는 거다. 유감스럽게도 시기가 잘 안맞아서 나는 상병 때 한번밖에 못갔다.

그리고 설악산 올라가는 것도 나름 소풍이라면 소풍이었다. 김밥도 싸가지고 가니까 ㅎㅎ. 다만 그 김밥을 넣은 군장을돌려가며 매는데 그게 열라 무거운 거다. ㅎㅎ

9월 중순무렵 드디어 때가 됐고, 일반 기상보다 한시간 빠른 다섯시에 기상하는지라 긴장하고 잠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에 일어난 상황은...


# 네 시에 기상 소리가 퍼진다. 물론 그때는 그게 네신지 몇신지 알길이 있나. 하여간 체감상 꽤 이른 시간에 깨운다.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완전군장을 싸라고 하는데... 이건 훈련때 하는게 아닌가.

어리버리 있다가 갈굼도 당하면서 허겁지겁 완전군장 모드로 들어가고, 기다리고 있으니 무슨 북한 잠수함 하나가 강릉 쪽에 떴단다. 강릉이면 우리 부대 바로 남쪽의 68 사단(대외 명칭도 그 무색한 방패부대 ㅋㅋ)이고 거기가 뚫렸다는 것이다.

진돗개 하나가 떨어진 상황. 그렇게 오래 가진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심상치 않은 이야기들이 들려온다. 투입된 공비들이 하나하나 잡혀 죽는 소식들, 특전사 한명이 헬기 레펠하다 총맞아 죽었다는 이야기, 매복들어간 애들 중에서 하나가 오줌 누러갔다가 오인한 아군의 사격에 죽었다는 이야기 등등...

부대 위로 수송헬기들이 줄줄이 날아가는 게 보이고, 우리 부대 헬기착륙장에도 몇 대 보이고, 부대 바로 옆이 속초 공항인데, 그 옆에 또 군단 항공 파견대가 있어 바삐 왔다 갔다 한다. 당시 정문 쪽에 기동타격대 식으로 위병나간 적이 있는데 같이 간 고참이 헬기용 유류수송차를 보면서 저기 근처에서 라이터 키면 불는다 말했는데, 믿거나 말거나..


# 우리야 본부대라서 해안에 나가있는 대대처럼 야간 경계근무시에 실탄을 안갖고 나가며, 그리고 경계근무 나가는 곳도 커맨드포스트(CP) 건물내의 상황실 앞 로비이고 혼자 나간다. ㅎㅎ 하지만 그때는 부대 곳곳에 초소도 증설되고 실탄도 지급됐다.  따라서 한번에 복조로 몇곳에 배치됐는데 한번은 근무 끝나갈 무렵 총소리가 났다.

우리 본부대 사람 중 하나가 현관 나오다가 총이 격발된 것이다. 아마 나오기 직전 실탄 장전 여부 확인차 위로싸 할 때였을텐데 격발된 건 둘째치고 그곳이 현관 천정 아래였던 것이다 -_-

천정에 맞고 팅팅팅 튕겼단다. 후덜덜

바로 그 사람이 우리 사무실 고참 중 하나였는데, 직접 물어볼 수 없는 것이고 혼비백산했고 무지 깨졌다는 소리를 들었다.


# 그런 상황 속에서도 사무실 업무는 또 업무대로 진행돼야 했다.

인사처 사무실 안에는 내 보직을 제외하면 모두 근무계라고 해서 병영생활 전반에 관련한 일을 맡는 것이다. 말이 맡는 것이지 그쪽은 거의가 공문 워드치는 것이었다.

그런 비상사태에서 근무계 쪽 일이 생길 턱이 없었다. 장교계는 또 일이 계속 있는 것인데, 사수는 분대장이라서 그런지 내가 있어서 그런지 계속 산속에 있는 야외진지에 나가 있었다. 따라서 사무실에 있는 병사는 계속 나 혼자였다.

입대 전까지만 해도 타이핑이란 건 자판만 간신히 외웠지 독수리 타법 자체였다. (그 시절은 인터넷도 없었던 때다)

그러니 초반에 정말 많이 갈굼을 당했는데 비약적으로 타이핑이 는 것이 바로 그때였다.

어쩌면 그때가 나에겐 기회였던 셈이다.


# 좀전에 그 야외진지 나간 사수가 부대로 귀환했는데 옴이 걸려서 왔다. -ㅁ-

난생 처음 들어보는 피부병이었는데, 이름부터 좀 거시기 하다. 계속 야외 초소에 쳐박혀 있었으니.

전염성이 강해서 의무대에 격리됐는데, 문제는 내가 그 사람과의 접촉을 많이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거.

일단 같은 내무반이었고 막내는 아니었지만(한달 후임이 하나 있긴 했다), 사무실 부사수라서 내가 밥을 타다 줬으며 업무 조언도 들어야 했기 때문.

거기에다가 안씻기로 소문나 간부들 사이에서도 갈굼당하는 사무실 하사관 중 하나도 그걸 걸려 있고, 어느 경로인지 모르겠지만 나도 슬슬 전조가 피어 올랐다.

그걸 걸리면 피부에서, 특히 다리에서 여드름보다는 작게 도돌도돌 일어난다. 그리고 열라 가렵다.

이렇게 하는게 잘못이지만 그냥 참고 아무에게도 말을 안했다.

아마 완쾌된 건 그 해 12 월 출장 때 나와서 목욕탕에 갔다오니 완전 가라앉은 것 같다. ㄷㄷㄷ


# 상황이 계속 끝날 생각을 안하자, 본부대에서도 해안 소초에 지원을 나갔다.

각 처부에 속한 병사들이 한 사무실에서 하나씩 나가는 식으로 했는데, 앞서 말했 듯 일이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서 다른 고참들이 나가줬다. 그런데 역시 본부대 고참들이 여기에 불만을 가져서 나도 결국 한번 나가게 됐다.

때는 10월 초중순쯤. 보통때면 완연한 가을의 쾌적한 날씨일 터이지만, 거기 나가면 미친듯이 춥단다.

방한용 외피, 내피(깔깔이 바지까지) 다 껴입고 투입됐는데, 정말 추웠다 -_-;;;

새삼 해안에 나가있는 대대애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전방 GOP 사단도 연대들끼로 교대로 들어가듯이, 여기 여단도 기간대대 4대대를 제외하고 세 개 대대가 교대로 해안 소초에 들어간다)

본부대에 있으면 소속은 같아도 얼굴보기 정말 힘든 병사들이 있다. 여단장 공관 파견병들이 그런데 그때 같이 나간 고참이 그런 공관쪽에 나가있는 사람이라 첨보는 얼굴이었다 덜덜덜 그래도 사람은 좋았다.

같이 이런 저런 노가리를 까면서 추위를 버티는데, 이미 한쪽 무리에선 술판이 벌어지고, 신명이 난 채로 돌아다닌다.

그리고 나는 동이 틀 무렵 정말 졸려서 서서 꾸벅꾸벅 잤다 -.-

'해안선'이란 영화를 보신 분들이 계실텐데, 거기 장동건이 영화 초반에 보여주는 초절정 군인정신 행동은 정말 이해할 수 없다. 음하하하


# 제법 큰 훈련에서는 피아식별띠를 하는데, 그때는 실제상황이라 매일매일 지정된 방식으로 피아식별띠를 해야하기 때문에 귀찮기도 했는데, 하나 더 하는 행동지령이 있었다.

부대 마크 청테이프로 가리기.

부대 식별을 막기 위해 그런 것인데, 나의 첫 출장을 그 상태로 나갔다. -_-;;; 나름 군생활 처음으로 사회에 나가는 것이었는데.


# 상황 중에 첫 출장을 나가게 됐다.

출장 내용은 '제급식병력보고서'를 원주에 있는 1군사령부에 제출하는 것이었다.

제급식병력보고서라는 것이 신문지만한 용지에 빽빽한 표가 있고 거기 숫자를 일일이 기입해야 한다.

총 8 장을 작성하며, 네 장은 직접 볼펜으로 필사하고, 나머지 네 장은 앞의 네장을 작성하는 동안 각각 한장씩 먹지를 대고 복사하면 된다.

전달에 어느정도 사수한테 배웠지만, 이게 워낙 복잡한 작업을 해야하기 때문에 다시 배워가며 거의 같이 하다시피 원고를 작성하고, 각각 네장씩 맡아서 했다. 그렇게 밤을 새워서 하고 아침 점호 끝나면 바로 밖으로 튀어나가는 것이다.

사실 이 작업은 할 때마다 이틀정도 밤을 지새워야 하는데, 출장을 나간다는 것으로 자진 밤샘작업이다 ㅎㅎ 동기부여란 바로 이런 것이다.

그렇게 첫 출장준비를 마치고 사수의 인도하에 원주까지 간다. 양양에서 원주로 다이렉트는 없다. 부대앞에서 양양읍까지 시내버스. 양양에서 강릉까지 시외버스. 강릉에서 원주까지 고속버스. 이렇게 하면 점심때쯤 1군사령부 도착이다.

그 여정 가운데 휴계소를 한번 가는데 거기서 아침을 해결하는 방법도 전수받았다 ㅎㅎ

아, 그날은 아직 상황 중이라 당일로만 나갔다 들어올 수 있었다. 그래서 원주에서 점심먹고 미련이 남아 극장에 갔는데 밤새고 온 상태에서 영화 내용이 들어올 수도 없었고, 계속 졸았다. 브루스 윌리스가 나온 영화인 거 같았는데 뭔지 기억은 안난다. 96년 가을에 개봉된 영화인데 ㅎㅎ

상황발생 한달 후라서 8군단 이외 지역은 이제 대부분은 평상시로 돌아간 듯 했고, 우리 둘만 부대마크를 청테이프로 가리고 돌아다녀서 좀 쪽팔렸다. -_-;


다음 이야기는 다음 회에...
by hogee | 2006/08/25 22:58 | 나불나불 | 트랙백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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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룸할매 at 2006/08/26 09:25
저 군대 있을 때에도 잠수함 떠서 완전 군장 하고 대기 했었는데, 그때랑은 다르게 실실 쪼개고 있었습니다.-_-;
Commented by placebo at 2006/08/26 11:08
역시나 남자들 군대 이야기가 나오면 글이 길어져요.ㅎㅎ
Commented by hogee at 2006/08/26 20:22
룸할매) 그때도 저 있었어요 ㅋㅋ

placebo) 낄낄 정말 그러네요.
Commented by Shooting군 at 2006/08/27 12:49
군대얘기란.ㅋㅋㅋㅋ 완전군장하면 떠오르는 것중 하나가 쪼개다가 걸린 일병 고참이랑, k-2가지고 손장난하다 걸린 이등병 고참이랑 멍하니 딴생각하다 걸린 고참 해서 3명 덕분에 첫 비상 이후 열나게 맞았더라는....
Commented by 폭주천사 at 2006/08/27 21:32
그 잠수함 나 입대하기 일주일 전이었는데. 짬차이가 나는구나.ㅎㅎ
Commented by hogee at 2006/08/28 03:05
Shooting군) 아직 그때도 구타가 있었나요 ㅎㅎ

폭주천사) 니가 타이밍 잘 맞춘겨 ㅋ 물론 나있는 지역만 그리 난리를 쳤던 거 같지만.
Commented by Shooting군 at 2006/08/28 04:47
제가 구타세대 마지막인듯 합니다. 저는 03군번인데 02여름-03여름 들이 과도기를 살아온 군번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부대 같은 경우는 제가 상병을 달때 쯤 구타는 거의 사라졌습니다.
Commented by par at 2007/06/27 23:57
반갑네요 저두 인사처 근무병 출신인데.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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